Kim Dong Yoo
Gallery Hyundai (Seoul)
2012.11.07 ~ 2012.11.30
English / Korean
김동유 회화의 연속과 변곡

김동유의 회화에는 꿈틀거리고 꼼지락거리는 특유의 물질적인 매력이 살아있다. 그것은 팝아트 고유의 드라이한 일루전 효과들과는 다른 차원의 매우 원초적인 회화본능 같은 것이다. 김동유 회화의 원초적 본능은 아무래도 섬세하게 살아있는 물감과 붓질의 물성과 행위의 흔적이 주는 독특한 매력에 있다 .전체 프레임 속에 드러나는 큰 그림의 형상이나 또는 그 속의 작은 프레임들에서 나타나는 형상의 일루전이 김동유 회화의 매우 차별화한 특성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김동유 그림을 겉으로만 흘낏 둘러보고 하는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김동유의 그림을 매우 가까이서 꼼꼼하게 읽어낸 독자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사실 김동유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개체와 군집의 관계는 매우 심플한 이분법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거기에서 다양한 서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어보인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은 큰 프레임 구조가 아니라 안쪽 작은 프레임의 디테일이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들어있는 수백 수천의 작은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노라면 동일율의 반복과 그것의 차이를 만들어낸 화가의 손길에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동유의 세계는 개체와 군집 사이의 열린 서사가능성에서 출발했다. 그는 특정한 사건을 기술하는 형상회화와는 다소간 거리를 뒀다. 가령 그가 한국의 분단문제를 다룬 그림을 보자면 이렇다. 그는 마릴린 먼로와 김일성,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를 연결했다. 그것은 20세기 중반의 한반도를 덮친 6.25전쟁이라는 대재앙과 관련하여 남한과 북한은 물론 미국 또한 이 사건의 당사자임을 드러내는 분단의 미술이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인 서술방식으로 자신의 회화속에 담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분단을 다룬 방식은 6.25전쟁 동안에 미군 위문공연을 다녀가기도 했던 마릴린 먼로라는 영화배우를 등장시키는 방식의 팝아트의 어법 이었다.
이러한 김동유의 프레임은 한동안 코리아 팝이라는 이름 아래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한 예술 흐름들 가운데 하나로 읽혀왔다. 대중적인 이미지를 현대미술의 주요한 소재와 주제로 채택하기 시작함으로써 고급문화로서의 시각예술은 대중과의 친밀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대성을 근간의 힘으로 가져야할 팝아트의 맥락화가 다소간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생동하는 우리시대의 대중적 아이콘들을 만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김동유의 회화 또한 이러한 문제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그 면면이 뚜렷이 드러난다. 존 F. 케네디를 비롯해, 다이애나, 박정희, 김일성, 덩샤오핑, 마오쩌뚱, 리콴유, 등 정치인들이 다수 등장한다. 여기에 리즈 테일러, 클라크 게이블, 제임스딘,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등이 짝을 이뤄 등장한다. 정치인과 영화배우의 조합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들의 만남이라는 맥락에서 그림을 읽는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친근감을 준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역사속의 인물들이다. 김동유는 왜 이렇게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역사속의 인물들만 다룰까?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준 것은 2010년에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김동유 개인전이었다. 초기작에서 최근작까지를 망라한 전시에서 우리는 김동유가 어떻게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모색기와 실험기를 거쳐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의 전시에는 더블 이미지와 멀티플 이미지의 세계를 열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다. 대나무와 나비, 호랑이, 무당, 고전회화, 키치회화, 계란껍질, 우표 등 그가 다뤄온 도상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와 저급문화, 예술계 안쪽과 바깥쪽, 일상과 사건, 역사와 현실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몇 년간 천착해온 세계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정치인과 영화배우 연작이었다.
김동유를 가르켜 지독한 그리기의 화가라고 언급하는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릴때 가지는 인내력이나 지속성의 문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설정한 의제에 있어서도 지독하게 하나의 프레임을 고집해왔다. 따라서 그를 가르켜 지독한 그리기의 화가라고 언급했던 것은 의제와 스타일 양측면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2005년 이후 지금까지 7년간 정치인과 영화배우를 결합한 더블 이미지 그림을 지속해왔다. 그것이 미술계 안팎의 환경변화와 무관한 김동유의 세계였다는 점은 그의 세계를 일별해본 전시에서 드러난 바와 같거니와, 그가 천착하고 있는 예술의 세계가 느림의 감성학에 근거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확실히 그의 회화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과 연속성에 천착하고 있다.
화가마다 각각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인데 김동유의 경우 아무래도 단기간의 질주로 반짝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장기간의 보행으로 굵은 자국을 남기는 예술가이다. 그런데 최근작들은 김동유의 느린 행보에 뚜렷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연속에서 변곡으로의 전환이다. 더블 이미지 방식의 최근작에서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역사적 평가와 고정적인 이미지 구축이 완성된 인물 도상이 아니라 동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지금까지의 그가 역사속의 인물들에 주목한 것에 비해 앞으로의 그가 동시대의 인물들을 다룬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자못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또하나의 관심사는 새로운 그리기 방법의 등장이다. 오래된 회화작품에서 나타나는 표면의 박락현상, 흔히 하는 말로 크랙 이미지를 끌여들였다는 점이다.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와 성모자상을 그린 두 작품에서 김동유는 화면 전체에 갈라진 표면의 이미지를 도입했다. 물론 화면 전체를 모노톤으로 정제한 까닭도 있지만, 온통 갈라터진 그림 이미지를 보는 관객은 빛바래고 낡은 이미지를 대할 때의 그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대중스타의 이미지를 두 가지 기조색의 체크무늬로 다루기도 하고, 해골을 그려낸 크랙 이미지 그림도 있다. 그의 작업실에 쌓인 미발표작들은 발표작들 이상으로 다채롭고 치열하다. 오래된 회화의 크랙 이미지를 도입하는 일은 앞으로 김동유가 연작으로 펼채낼 신작 회화들의 유력한 방법론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화가에게 있어 연속과 변곡의 문제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때가 되면 한 번씩 스타일을 바꿔주곤 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김동유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연속과 변곡을 주도하는 예술가의 마음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일관성을 유지해온 더블 이미지가 어떤 이유에서 변곡점을 넘어서는지가 문제다. 김동유의 마음은 역사와 현실에 관한 고민에 있는것 같다. 그는 신작 크랙 이미지 그림들에서 피에타와 바니타스를 등장시켰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동서고금을 두루 오가는 그의 회화 세계가 역사적 상징성이 큰 이미지들을 다룬 이후, 다시 동시대의 문제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궁굼함, 수년간의 연속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변곡점에 도달한 김동유를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