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r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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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유의 이미지들은 모두 사진으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들이다. 사진이 최초로 발명된 이래로 사진은 예술가의 손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미지로 간주되었다. 그 기계적인 이미지라는 이유 때문에 사진은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고 예술가들로부터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인상주의자들은 사진과 경쟁하기를 바라면서 역으로 사진과는 정반대되는 미완성의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쇠라와 같은 점묘파 작가들에게서 사진은 한층 강화된 존재를 과시한다. 즉 점묘파 화가들은 사진의 포토그람처럼 이미지의 각 미세 단위를 정밀하고 과학적으로 포착하려한 것이다. 즉 선택하고 제거하여 중요한 부분만 강조하는 예술적인 묘사 대신에 사진처럼 모든 세부를 빠뜨리지 않고 복원함으로써 과학적인 진실성을 보증하려 했다. 이렇게 화가 개인의 주관성을 제거한 덕분에 사진은 모더니즘 시대에 구박을 받은 이후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와 다시금 각광을 받게 되었다. 김동유는 사진이 이러한 객관성의 담보자라는 잘못 알려진 사실을 교묘히 이용한다. 즉 자신의 이미지의 진실을 담보해주도록 사진 이미지에게 요청한 것이다. 김동유의 이미지들은 외면적 매끈함에 비해 극히 유동적이다. 다시 말해 이중적이다. 각각의 부분들은 독자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며 주변으로부터 절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고립되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같은 또 전체이면서 부분으로 돌아간다. 이런 정체성의 이중성은 사진적인 이미지가 주는 진실 게임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즉 사진 이미지들은 자신들이 어떤 진실을 전혀 가감없이 문서로써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들은 대상의 피와 살과 전혀 닿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시뮬라크르로서 대상 외의 또 다른 대상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하물며 화가 김동유가 심혈을 기울여 직접 손으로 사진 이미지를 본떠 그린 이미지들은 그 이중성에 또 한 번의 이중성을 겹치고 있다

이 수 균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