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me and St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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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유토피아페인팅―나는 '이발리즘' 그림이라고 부른다―이라 불리는 그림들을 구해 그 표면에 다시 그리기를 시도한다. 이미 그려진 것들을 용인하고 수용하는 선에서 약간의 균열을 일으킨다. 그것은 원본에 덧대는 것이자 간섭하고 다른 맥락으로 비트는 일이다. 사실 그 개입, 간섭은 원래 그 이발소 그림이 원하는, 요구하는 것들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구실한다. 그런데 그 장치가 역설적으로 이발소 그림이 지닌 허구성, 그러니까 실재를 대신하는 가짜 그림의 정체를 순간 폭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상투형에 대해 상투형으로, 클리셰에 클리셰로, 키치에 대해 키치로 대응하고 부가하고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의미론적인 역설 상황'이다. 그는 새로운 것을 세련되게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것들을 키치적으로 감각적으로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천박하고 상투적인 것들을 가지고 자기 식으로 어눌하게 이야기한다. "진부함을 탈피할 수 없을 바에야 아예 진부하게 살기로 작정한 그의 작품의 일관된 정조는, 상투적인 것에 대한 매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대한 성실한 빈정거림이다."(이윤희)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